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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카테고리 없음 2022. 10. 9. 23:48


    (아이리아님 글커미션입니다!!)



    “아리아 진넨스.”

    연구실 내에는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싸한 분위기 속, 모이라 오디오런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늘 가라앉은 목소리라고 할 수 있던 그것은, 평소의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단호했고 또 증오심마저 느껴졌다. 모이라 오디오런은 아리아 진넨스를 향해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큰 보폭으로 성큼 좁혀진 거리에 아리아 진넨스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저기, 이건. 그게…”  아리아 진넨스는 횡설수설한 해명으로 운을 뗐으나, 연구실의 주인이 요구한 것은 해명이 아니었다. 그가 품고 있는 것은- 그래, 악의다. 이건 명백한 악의를 품고 있는 목소리다. 그 이유라 함 역시도 명백했다.

    아리아 진넨스가 모이라 오디오런의 연구실에 무단 침입을 했다가 적발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리아 진넨스는 모이라 오디오런을 동경했다. 그 막연한 동경의 시작은 불씨와도 같은 형태였다. 이제 막 불이 붙기 시작한 작은 불씨. 그건 그가 학생일 때부터 피어오르던 것이었다. 그 덕이었을까, 탓이었을까. 아리아 진넨스는 유능했다. 젊은 나이임에도 이루어둔 것이 많다며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화려한 수상 경력. 수십 개의 논문. 한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특허. 모두 아리아 진넨스를 대표하는 것들이다. 오죽하면 ‘그 오버워치’조차도 그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을까. 아리아 진넨스가 오버워치에 입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예견된 것처럼 흘러갔다. 유식하고 유능한 인재에게 준비된 앞날은 탄탄대로였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모든 것이 계획대로. 심지어는 열정에다 노력파이기까지 했으니, 아리아 진넨스에게 가히 부족함이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딱 한가지. 정말 딱 한 가지의 문제가 있었다면 그 사람일까.


    모이라 오디오런. 존재만으로 아리아 진넨스의 허점이 되는 여자.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우연이었다. 모이라 오디오런이 오버워치로 하여금 퇴출이 된 지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렇기에 아리아 진넨스는 오버워치가 모이라와 자신을 잇는 다리가 되어줄 거라곤 생각도,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오버워치의 본부 기지 내였다. 모이라가 연구 자료를 챙기기 위해 카드 키를 빌리러 온 날이었다. 두 사람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연구실 입구에서 마주쳤다. 자동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래로 내려온 시선과 위로 올라온 시선이 마주친 것이다. 어찌나 놀랐는지, 아리아 진넨스는 들고 있던 서류 다발을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바닥은 순식간에 떨어진 서류 더미로 난장판이 되었으나 모이라 오디오런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아리아 진넨스를 향했다. 아리아 진넨스는 거울을 보지 않았음에도 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모이라 오디오런이 눈앞에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모이라 오디오런’이!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마냥 넋을 놓은 아리아 진넨스는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기묘한 정적이 이어지고 있음을 자각했다. 의아함을 느낀건 그보다 조금 뒤인 지금이다. 어라, 아리아 진넨스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입을 열었다.


    “저기,”

    하지만 운을 뗌과 동시에 어깨에 둔탁한 충격이 일었다. 모이라 오디오런이 제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 탓이었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주변의 공간은 꽤 넓었다. 고의성. 아리아 진넨스는 그 세 글자의 단어를 일순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의아함을 느꼈다. 모이라 오디오런은 분명 고의적으로 자신의 말을 끊으며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대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냈다. 찰나에 비친 표정은 분명.


    나를 경멸하고 있었어……  “그 인간.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네!?”  아리아 진넨스는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눈앞에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은 앙겔라 치글러가 책상 앞에 앉아 고개만 돌린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치글러 박사의 연구실에서 소리내 중얼거린 모양이었다. 아무리 동경하던 이와의 첫만남이 충격적이었어도 그렇지, 하루종일 정신놓고 다닌 것도 모자라 사람을 면전에 두고 혼자 중얼거리기까지 하다니. 아리아 진넨스는 어쩐지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큼, 크흠. 헛기침을 두어번 한 아리아 진넨스는 사과를 하고자 입을 열었으나 선수를 친 건 앙겔라 치글러였다.


    “닥터 오디오런 이야기죠? 말했듯이, 그 인간은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사람은 벌레보듯 한다니까요.”


    앙겔라 치글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몇 번 데여본 사람의 얼굴이다. 지겹다는 기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모이라 오디오런과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이리 상냥하게 설명해주는 것만 보아도 알겠지만, 본질적으로 상냥하고 다정했다. 사람을 깔보지 않았으며 이유없이 미워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벌레보듯 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아리아 진넨스가 오버워치에 들어오며 직속 선배를 담당하게 된 탓에 더욱 신경쓰는 것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상냥하단 점에서는 틀린 말이 없다.

    “당신이 닥터 오디오런을 좋아하는 걸 알아요, 그래서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앙겔라 치글러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곤,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신, 오디오런에게 미움받고 있어요.”

    그런 앙겔라 치글러가 제법 직설적인 소리를 했다. 지금 말해두는 편이 덜 상처이리라 생각한 탓일까, 언젠가 알아야 할 진실이라 생각했던 탓일까. 어느쪽이든 앙겔라 치글러는 아리아 진넨스가 받게 될 충격과 상처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상처받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아리아 진넨스는 모이라 오디오런을 사랑했고,


    “……알고 있어요.”


    모이라 오디오런에 대해 잘 알았으니까.


    사랑, 이것은 정말로 사랑이다. 동경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어느덧 사랑이라는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그 사람을 닮고 싶다에서 그치는 것 따위가 아니다. 그 사람과 이어지고 싶다, 가까워지고 싶다. 미움받으면 아프고, 원망받으면 고통스럽다. 아리아 진넨스는 슬프게도 자신이 미움받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모이라 오디오런, 비윤리적인 사상과 실험으로 오래 전 오버워치에서 퇴출된 여자.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들어온 것이 바로 자신. 아리아 진넨스. 모이라 오디오런 못지 않게 유능했으나 인간을 아낄 줄 알았던 그는 오버워치의 적임자였다. 모이라는 그를 자신의 대체품 취급하며 아니꼽게 보았으니, 긍정적인 감정이 자리할 리 있나. 결국 관계를 긍정적으로 풀어가는 건 전부 아리아 진넨스의 몫이 되어버렸다.


    아리아 진넨스는 제법 최선을 다했다. 모이라 오디오런의 개인 연구실에 쿠키를 사가거나, 커피를 사가거나. 때로는 감성적인 방법을 쓰겠답시고 꽃다발을 들고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부 문전박대였다. 모이라의 얼굴을 보는 날이 있다면 기적적인 날이 될 정도로, 모이라 오디오런은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아리아 진넨스는 20시간 넘게 연구실 앞에서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모이라 오디오런은 48시간이나 연구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감히 무엇이든 뚫는 창과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한 번 사랑으로 피어오른 불꽃을 꺼뜨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꽤나 근성 있는 아리아 진넨스는 포기란 걸 몰랐으며 원하는 건 이루어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상대가 모이라 오디오런이라는 것이 꽤나 복병이었으나 어찌되었든 아리아 진넨스는 결국 해낼 것이라고.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고생 꽤나 할 걸요, 그리 중얼거리며 머리를 짚은 건 앙겔라 치글러 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때와 같이 모이라 오디오런의 연구실을 찾은 아리아 진넨스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어라, 문이……”  저항없이 돌아가는 문고리. 문이 열려있었다. 잠금쇠도, 도어락도 걸려있지 않았다. 힘주어 돌리자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은 어두웠다. 밖에서 들어온 빛으로 연구실 내부가 밝아졌다. 안은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으며, 실험실 특유의 약물 냄새가 났다. 인기척은 없었다. 일부러 발소리를 냈음에도 안에서 돌아오는 기척이 없다. 아리아 진넨스는 문득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천하의 모이라 오디오런이 연구실 문을 열고 나갈 리 없다. 그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의, 자기 것을 감추기 바쁜 그 인간이 연구실 문을 열어두고 외출을 했다고? 그렇다면 가설은 하나다. 모이라 오디오런은 안에 있고, 그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리아 진넨스가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박사님, 모이라 박사님! 안에 계세요!?”  벽을 더듬자 스위치가 손에 잡혔다. 달칵, 소리를 내며 스위치를 켜자 순식간에 주변이 밝아졌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빛에 잠시 눈을 찌푸렸으나, 다행히도 염려했던 참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잘 정리된 연구실 풍경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리아 진넨스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박사님, 저에요! 아리아! 어디 계세요?”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숨을 곳은 없다. 이상하다, 고개를 모로 기울인 아리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실험대 위에 올려진 한 실험일지였다. 아리아 진넨스는 모이라의 필체를 멍하니 구경하다 저도 모르게 그걸 집어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박사님!”


    아리아 진넨스는 밝은 목소리로 뒤를 돌았다. 모이라 오디오런이 열린 문에 기대 서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팔짱을 낀 채였다. 아리아 진넨스는 그가 무사함에 안도했다가, 뒤늦게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았다. 열린 개인 연구실에 멋대로 침입해서 실험일지를 뒤적거리고 있는 외부인. 지금의 자신은 딱 그 꼴이다. 어…? 그제야 아리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리아 진넨스.”

    연구실 내에는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싸한 분위기 속, 모이라 오디오런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아리아 진넨스가 모이라 오디오런의 연구실에 무단 침입을 했다가 적발된 것이 바로 지금, 이렇게 된 상황인 것이다.


    아리아는 횡설수설했으나 모이라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보조 연구원 주제에, 쥐새끼마냥 기어들어오다니.”

    어느덧 뒷걸음질을 치다못해 벽 끝까지 내몰린 아리아 진넨스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래, 누가 무얼 훔쳐오라고 했지? 아니면 내 박사 학위가 탐이라도 났나?”  숨이 닿을 듯 얼굴이 가까워지자, 아리아 진넨스는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어쩌면, 이 인간은 사람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야 눈앞에 있는 건 명백한 악의. 어쩌면 살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뒤이어 들린 쾅, 하는 파열음.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자신의 얼굴 바로 옆을 내리친 모이라 오디오런의 손이었다.


    “나가.”


    목소리는 싸늘했으나 꼭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눈동자가 으르렁대는 맹수를 닮아있었다. 그곳에서 어떻게 도망쳤는지도 모르겠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던 것 같다. 아, 이 인간과는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겠구나. 죽어도 친해질 일은 없겠구나. 거의 울상인 얼굴이었다. 아니, 반쯤 울었던 것도 같다. 그 맹수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모이라 오디오런은 포식자, 육식동물 그 자체-


    물론. 지금은 자신이 길들인 여우지만 말이다. 아리아 진넨스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쪽잠을 자고 있는 모이라 오디오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이라 오디오런은 그 손길이 익숙한지 미동도 없이 곤히 잠들어있었다.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잠든 모습이 평온해보였다. 평온하고, 평화롭기 짝이 없는 흔한 신혼 부부의 모습이다. 누가 알았을까, 두 사람이 이런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을지. 자, 오늘도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아리아 진넨스는 몸을 틀어 모이라 오디오런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일어날 시간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뒤이어 둘이 향하는 곳은 연구실이겠지. ‘두 사람’의 연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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