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의 태양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대학의 장관들도 슬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때,깊은 구석에 쳐박혀있던 낡고 구겨진 신문지 한장을 찾았다.싸구려 종이로 인쇄된 그런 신문이 아니라,코팅되고 빳빳하게 잘 코팅된 그런 흰색의 종이. 종이류는 대부분 나에겐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라, 따로 파일집을 만들어 보관을 하는데 어째서 이 신문쪼가리는 나뒹구는지 모르겠다.종이를 억지로 손을 피고, 책상에 대어 자로 몇번 펴서 무슨 내용인가 봤더니 그 때의 일이였다. 순간 벽돌로 나의 뇌를 긁은 것처럼 뒷통수가 알싸해졌다. 잠깐의 틈도 없이 폭발한 블랙워치 본사건물. 그 때 죽었더라면 아마 제일 억울한 죽음이였을지도 모른다.
제라르가 블랙워치에 잠시 방문을 했었던 날이다. 그 때 나는 초면인 그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연구실에 들어갔다.그 때는 그와 나랑 깊은 관계가 아니였으며, 그날 그가 온 목적과 내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라르와 인사하고 왔어?" "네.생각보다 좋은 인상이신 것 같아요." " 프랑스사람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 잠깐 만났는데 너무 빨리 캐치한거 아니야?" "무슨소리예요 오디오런 ...설마 신경쓰이는 거 아니죠?" "너의 사회생활을 위해 내버려둬야 하는 건 맞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잠시 나갔다가 올게 기다리고 있어." " 당신 어딜 나가..?? 무단으로 나가면 안되지 당신.." " 레예스에게 허락 받았어. 별건 아니고,아는 관계자에게 서류를 받을 일이 생겨서 말이야. 올 때 커피 사올테니 조금만 참아." " 빨리 와요.안그래도 커피가 좀 고프긴 했어." 그녀는 나와 짧은 입맞춤을 하고 가운을 벗고 연구실에서 나갔다. 내 연구실엔 내 모교인 오아시스 출신의 대학원생 조수가 있었는데 실력도 좋고,성실한 친구였다. 내가 박사학위를 따고 연구할 분량,깊이도가 달라지니 혼자하기엔 버거움을 레예스가 느꼈는지, 조수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저 단기간제의 조수였다. 쫄랑쫄랑 그 귀여운 조수는 나에게 박사님 이거 어디에 넣으면 될까요,반응이 약한데 좀만 더 넣어볼까요,등등 나에게 물어보는 것 하나하나가 오버워치 신입시절 때를 기억나게 해줬다. " 진넨스 박사님,제가 아까 밑에 보관실에서 연구자료랑..여러 블랙워치에 대한 서류를 들고 왔잖아요." "응. 혹시 그 파일 중에서 망가지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어?" 조수의 표정이 조금 심상치 않아졌다. "그건 아니고, 거기서 본 여자가 수상해서요. 오늘따라 짐 나르고 하는 직원들이 많았잖아요,엘레베이터를 타고 과학자들 전용 보관실에서 나오는데 느낌이..영 아니였어요." "블랙워치 자체가 느낌이 영 좋아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많잖아. 아마 그 직원은 힘들어서 인상이 그렇게 보였을거야." "아니예요..누가 보관실에 들어가서 손목시계에 있는 타이머를 잴까요?..그리고 그 여자는 한쪽 팔 일부를 인공으로 개조한 것 같았어요." "수상한 사람은..아닐거야. 로비에 제라르와 레예스,맥크리가 있었는걸?" "그렇죠? 그냥 제가 잘못 보고 느낀거겠죠??" "그래. 맞다고 해도 레예스가 그 전에 잡았을거야."
"오디오런이 영 안오네..." 그녀는 근처라고 했으면서 왜 안올까.설명할 것이 그렇게 많나. 일부러 만남에 방해가 될까봐 전화를 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나 싶다. 창문쪽을 기웃거려도 외부인들만 있고 붉은머리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밖에는 레예스와 맥크리가 단둘이서 나가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저렇게 쉽게 본부를 밖에 나가도 되나 싶었지만 ...금방 돌아오겠지 했다. 갑자기 저 지하 깊은 곳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연구실은 적어도 3,4층 이상부터인데 5층 치곤 깊은 진동이였다. " 지진의 진동이 아니야." 조수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러게, 왜 그 모르는 이는 음침하게 타이머를 쟀을까? 다시한번 창문을 힐끗보니 몇몇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떠오르지만 폭발하기 전 그 짧은 시간안에 내 조수를 끌어당겼다. "엘라!! 약품 근처에서 떨어져!!.." 밑에서부터 올라온 진동이 위로 솟구치듯이 여기까지 폭발이 일어났다. 큰 굉음과 함께 이 건물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니, 그냥 폐허처럼 무너졌다. 귀가 먹먹해지고 연기와 먼지로 인해 숨을 쉬기 힘들었지만 방심하기엔 이르다. 과학자층엔 각각 약품실이 있으며,곧 폭발로 인해 번진 불이 약품들과 반응하여 큰 2차폭발이 내부에서 일어날거다. 그 생각이 떠오르고 나자마자,옆 약품실의 2차폭발로 우릴 보호해줄 어떤 것도 모조리 사라졌다. 솔직히 여기서부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미 나와 내 조수는 깨진 유리들이 폭발과 함께 피부를 긁어놔서 피를 흘렸고 가스와 먼지가 쌓여 숨을 제대로 못쉬어서 고통스럽게 기침만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레와도 같았다.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놓지 않고 잡았던 조수의 손은 이미 의식도,인간으로서의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다리가 무거운 건물 벽의 깨진 조각 일부에 깔린 채 의식을 잃었다.
환청처럼 레예스와 맥크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에겐 그런 부름을 대답해줄 어떤 힘도 없었으며,무의식에 가깝게 레예스에게 시체마냥 업혀 나왔다. 어둡고 먼지 쌓인 곳에서 나오니 햇빛이 느껴졌다. 엠뷸런스 소리와 알 수 없는 이태리어. 다시 살았다라고 생각이 들 때쯤,다시금 눈이 감겼다. 익숙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그녀에게 미안하게도 대답을 해줄 힘이 없었다.내가 해줄 수 있었던 대답은 작게 오르락 내리락하는 상체의 윗부분으로 아직 살아있다라는 신호였을 뿐이다. "진넨스, 정신차려. 아직 죽기엔 이르다고.병원까지 그리 멀지 않으니깐 조금만 더 버텨줘.." 역시 이상황에서도 그녀답고,가장 간절한 말이였다. 그래,당신까지 그 상황이였으면 우리의 대화는 금방 다녀올게에서 끝났겠지.. 내가 당신이 사랑하는 인물 중 하나였기에 살아남은 것이였을까,아니면 그래도 난 구출되었을까..도대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오버워치 관련 과학자로 살아가는게 이렇게나 위험하고 비참할까 싶었지만,오버워치가 아니였으면 나와 오디오런과의 관계는 없었을거다.
".....아," " 정신이 든거야? 마취에서 깨어나서 다행이군. 병원에 오자마자 수술해서 수면마취를 했거든.어디 아픈 곳은 없나?" " 머리가 띵하고 다리가 아직 아프긴한데 견딜만해요." 깨어나보니 오버워치 본부 병실이였다. 그곳이랑 달리 조용하고 아주 쾌적한 장소였다. 오디오런은 옆에서 사과를 다 깎고 홀로그램창을 띄워 내 몸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 골절된 부위가 많았어. 골절로 인해 몇몇 장기는 손상을 좀 입긴 했지만 다행히 치료 후엔 별 문제 없을 것 같아. 다리는 좀 아플만해. 다리가 제일 심각했거든.레예스 사령관의 말을 들어보니 다리가 깔렸다고 하던데, 기억나? 당신이 어디까지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과거의 기억까지 기억났으면 해." " 조금 기억나지만 폭발 이후부턴 거의 기억이 안나요.. 저기 모이라," "응?" "당신은 그 때 건물에 없어서 다행이네요." " 하지만 널 잃을 뻔했는데 심적으론 다행이였을까?만신창이에 가까운 너가 레예스에 업혀 나왔을 때 이미 숨이 끊긴 상태인줄 알았어. 레예스가 아직 숨이 붙어있다고 했지만,정신을 못차리고 기절한 상태여서 걱정했었지." " 내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오디오런은 날 이마에 짧게 입맞춰주고 조심히 안아줬다. 얇고 가느다란 손의 촉감과 그녀의 호흡패턴만 봐도 날 얼마나 걱정했는지 느껴졌다. " 아마 너가 깨어나지 못했더라면,나에겐 별 하나를 잃은 듯한 기분이겠지."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고 나에게 잠깐 기대자,나는 그녀를 다시 끌어안고 도닥여줬다. " 괜찮아요.나 잘 살아있어요. 조금만 회복기간 갖고 있다가 나랑 다시 연구해요.치료 잘 받았는데 이젠 걱정없지." "당분간 내 집에서 회복기간을 갖도록해. 스튜랑 빵도 구워서 줄테니깐 그 기간동안 편식하지 말고 내가 주는 거 잘 먹고." 그리고 난 4일동안 병원에 있다가 거의 보름에서 한달동안 오디오런네 집에서 잠깐 살았다. 오디오런은 이 폭발의 주범은 탈론 스파이로 의심된다고 했으며 아직까진 모른다고 했다.(시간이 지나자 탈론이 확실해졌다.)내 조수는 괜찮냐고 물어봤지만,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맥크리에게 업혀왔을 때 나와 달리 조금의 숨이 느껴지지 않았고,의사로부터 사망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오디오런집에서 살 때쯤 들었다. 겨우 대학생을 졸업하고 나의 연구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찾아온 나의 첫 친한 후배는 자신의 꽃도 못피워보고,숨을 거두었다.내가 그 아이의 말을 들었더라면 우린 그전에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텐데.박사를 딴 나는 그 기쁨에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부주의만 강해져,안그래도 귀한 친구를 하나 잃었다. 그 때 스무살 후반에 박사를 딴 나는 처음으로 강한 죄책감이 느꼈고,오아시스 대학에 먹칠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하지만 오디오런은 그런 일에 큰 연민을 느끼지 않았으며,오히려 희생자가 주요인물이 아닌 다른사람이여서 다행이라고 했다. 지금은 그 이야기는 10년 전 이야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블랙워치가 세상 밖에 밝혀지면서 모든 것이 해체되고 우리는 오아시스로 와서 대학의 장관직을 맡고 있다. 누가 알았을까,나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조직이 지금은 나의 조직일 줄은. 나를 구해준 가브리엘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버리고. 그래, 지나간 일이야. 지금 괜찮으면 되는거지. 종이를 다시 접어 있던 곳에 넣어뒀다. 긴 회상을 하다보니 오디오런이 퇴근하면 자기 연구실 앞에 오라는 문자가 몇분 전에 와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고 다시 없었던 일인 것처럼 퇴근했다. 다시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거고,내가 당하지 않을 것이다.